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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도 싫은 훈련병 신고식.
지금도 그때의 신고식을 떠올리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머리가 하얘진다란 말이 실감나는 그런 신고식이었다.
물론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 버린다는 건 아니다.
머리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는 것 같은, 아무생각도 나지 않는 그런 상태.
여러분들은 겪어 보았는가?

100여명의 까까머리 훈련병들이 군기가 바짝든 상태로 군대 침상위에 서 있었다.
그때 내무반장이 '목소리 큰 눔 나와'란 명령에 아무 생각없이 블루팡오 나서게 되었고, 정말 목소리가 컸는지 신병을 통솔할 수 있는 중대향도란 자리에 섰다.
으이구~~ 그 중대향도...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아뭏튼 신병 훈련소에 왔으니 처음 준비하는 것이 신고식이렸다.
그 신고식 별거 아니지만 그땐 왜 이리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몇년 몇월 몇일에 블루팡오와 몇 명은 양평 기계화 보병 사단에 입소했음을 신고한다는 그런 짧막한 내용인데 그게 잘 안되더라.
조금이라도 버벅거릴라 치면 내무반장의 군화발이 가차 없이 내 몸에 날아왔다.
내무반장 매트릭스버젼을 연상하는 폼으로 손과 발이 동시다발로 블루팡오에게 날아온다.
'퍼버벅~~'
아프다고 소리치면 내무반장 아프냐고 물어보며 더 빠른 동작으로 ...
더 이상 맞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가며 어색한 신고식 준비를 마치고, 블루팡오는 연병장 사열대를 바라보며 제일 앞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고 그 뒤에 100여명의 훈련병들이 줄을 마추어 서 있었다.
블루팡오야 신고식 잘 해라! 그래야 그렇지 않으면 우린 지옥행이다.
신병 동기생들이 전 날 신신당부 했던 말이다.
'나도 알고 있어, 열심히 준비 했으니 문제 없겠지. 잠이나 잘 자자!' 이런 말을 하긴 했지만 난생 처음 해 보는 신고식이라 걱정이 많이 되긴 했다.
드디어 사단장과 기타 군 관계자들이 입소식장에 들어서고 군악대의 우렁찬 팡파레는 울려 퍼지는데, 블루팡오는 한 여름의 뜨것운 햇살을 받으며 엄청 긴장하고 있었다.
드디어 신고식, 내무반장의 눈초리로 시작하란 메세지가 오고 블루팡오는 그 커다란 목소리로 신고를 한다.
" 충성! 신고합니다. 1995년 8월 XX일부터 1995년 9월 XX일까지 - 여기까지는 잘 간듯 한데, 그 다음부터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앞에 사단장과 기타 간부들의 근엄한 표정과 주변의 많은 장병들 그리고 매서운 눈초리의 내무반장등이 한 순간 내 눈가에 스쳐 지나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블루팡오는 사단장님께 신고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내 밷았다고 수차례 얻어 터지면서 내무반장에게 들은 소리다.
내가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던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뭏튼 그런 어처구니 없는 신고식이 끝나고 사단장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퇴장하시고, 내무반장은 내게 일갈한다.
'블루팡오, 너....뿌드득..(내무반장 이 가는 소리) 오늘 죽었으~~~, 사열대에 거꾸러 엎드려 뻗쳐 있어...'
그때까지 하얗턴 머리가 현실을 직감하며, 노랗게 변해 버렸다.
불쌍한 블루팡오는 연병장 사열대에 거꾸로 쳐박혀서 내무반장의 명령만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애꿎은 동기생들은 오리걸음으로 내무반으로 이동을 하며 뙤약볕 밑에서 x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애효 ~ 앞으로 동기생들을 어떻게 보냐?
애효 ~ 블루팡오 훈련병 생활 완전 종쳤다. 땡 땡 땡...

이미지 출처:동고동락, 사관학교 졸업식 중.

블루팡오에게도 저런 선서 파일을 주었더라면 X망신 당하지 않았을텐데...
(위 사진의 선서자는 절대 블루팡오 아님)

PS : 제가 군생활 하던 시기(1994년도)엔 구타가 참으로 많았답니다. 그땐 구타가 군기의 상징이었던 터라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요새 군생활 하시는 분들은 이런 기억이 별로 없으실 것입니다.
그 만큼 군이 좋아졌다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