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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전경도 의경 출신도 아닌 현역병 30개월 만기 제대한 사람입니다.
1984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 최대의 격변기랄 수 있는 시절에 전 전통을 경비하는 근위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두번의 최대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한번은 전쟁의 위기 였으며, 한번은 시민 폭동(제 군 근무 중 표현)이었습니다.

전쟁의 위기는 다름아닌 1985년 2월 25일 미그 19기를 몰고 이웅평 대위가 월남한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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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웅평 대위가 몰고 귀순한 믹 19기

사진 출처 : 곰PD의 전쟁 이야기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청와대 비상벨이 울리고, 각 부대의 군인들은 자신의 전쟁 발생시 지켜야할 진지로 5분내에 출동을 합니다.
청와대 비상벨이 울리면 자신의 소총을 들고 실탄을 상황실에서 지급을 받아 전 1초소라는 제 근무지의 제일 정상으로 뛰어 올라 갔습니다.
그곳엔 M60이라는 가공할 성능의 기관총도 거취 되어 있던 곳 이었습니다.
다른 초소엔 발칸포 및 오리콘 포라는 아주 강력한 화기들도 있었습니다.

제 발 아래로 광화문 대로 가 훤히 보입니다.
그곳을 바라보며 다짐합니다.
우리가 서울을 지켜 낼 것이다.
그동안 군에서 훈련했던 모든 것으로 너희를 박샐낼 것이다... 뭐, 그런 사기가 충만했었지요.
결국 전쟁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으로 종료되어 큰 한숨을 몰아 내쉬는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두번째의 위기는 전쟁 상황이 아닌 서울 시민의 폭동?이었습니다.
어떠한 사건인지는 제가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 합니다.
단지 저희는 지휘관의 명령으로 폭동진압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갖추고 부대내에서 광화문 지역으로 투입 초읽기에 들어 갔었습니다.
그 당시에 출동 명령만 떨어졌다면 5분내에 서울 시민들에게 달려 나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전 그 당시 청와대 인근에서 발생한 시위를 폭동으로 간주 했었으며 그들을 우리가 진압을 해야 한다는 기본 훈련을 철저하게 받았었습니다.
저의 군 생활 중 전쟁 대비 훈련 역시 철저하게 받았지만 아울러 폭동 진압 훈련 역시 빡세게 받았습니다.
전경보다도 더 혹독하고, 철저하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와 제 동료들 심정이 어떠했는지 아시는지요.
꼭 양심선언 하는 기분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너희들(시위자들) 때문에 우리들이 이렇게 X 고생을 한다,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다.(지금 생각해 보면 전 생각이 너무 모자랐습니다.)
정말 악다구니가 바쳐 있는 상태였습니다.
만일 그 당시 우리 부대원들이 출동했었다면 정말 큰 불상사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다행이도 이 역시 대기하다가 철수 하고 말았습니다.

작년 소고기 파동 당시 뉴스를 접했을때 광화문에 컨테이너를 쌓아 놓고 촛불 집회 참가자를 통제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전 바누아투에서 그 사진을 보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저 컨테이너 잘 쌓아 놓았다라고 생각도 했습니다.
만일 시위자들이 광화문을 거쳐서 청와대로 들어섰다면 아마도 저희 부대원 같이 철저하게 훈련 받은 군 부대 요원들이 투입 되었을 것이며, 악에 바쳐 있는 군 요원들이 시민들을 어떻게 다루었을까 생각해보면... 그러했다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소름 끼치도록 아찔했었던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각설하고, 어쩜 지금 용산 참사 추모 대회의 시민들을 봉쇄하기 위하여 투입된 전경도 그때 저의 심경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란 생각을 해 봅니다.
현재 전경의 눈엔 자신보다 연배로 보이던 말던 크게 개의치 않을 정도의 극심한 감정의 혼란 속에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현재 누구의 잘못을 가리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경의 어머니가 전경의 위치 였다면, 전경이 시위대의 위치에 있었다면 우리 모두는 자기 자리에서 비슷한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만 단지 이러한 우리의 현실이 개탄 스러울 뿐입니다. ㅠㅠ

전 전경도 의경 출신도 아닌 현역병 30개월 만기 제대한 사람입니다.
1984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 최대의 격변기랄 수 있는 시절에 전 전통을 경비하는 근위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두번의 최대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한번은 전쟁의 위기 였으며, 한번은 시민 폭동(제 군 근무 중 표현)이었습니다.

전쟁의 위기는 다름아닌 1985년 2월 25일 미그 19기를 몰고 이웅평 대위가 월남한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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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웅평 대위가 몰고 귀순한 믹 19기

사진 출처 : 곰PD의 전쟁 이야기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청와대 비상벨이 울리고, 각 부대의 군인들은 자신의 전쟁 발생시 지켜야할 진지로 5분내에 출동을 합니다.
청와대 비상벨이 울리면 자신의 소총을 들고 실탄을 상황실에서 지급을 받아 전 1초소라는 제 근무지의 제일 정상으로 뛰어 올라 갔습니다.
그곳엔 M60이라는 가공할 성능의 기관총도 거취 되어 있던 곳 이었습니다.
다른 초소엔 발칸포 및 오리콘 포라는 아주 강력한 화기들도 있었습니다.

제 발 아래로 광화문 대로 가 훤히 보입니다.
그곳을 바라보며 다짐합니다.
우리가 서울을 지켜 낼 것이다.
그동안 군에서 훈련했던 모든 것으로 너희를 박샐낼 것이다... 뭐, 그런 사기가 충만했었지요.
결국 전쟁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으로 종료되어 큰 한숨을 몰아 내쉬는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두번째의 위기는 전쟁 상황이 아닌 서울 시민의 폭동?이었습니다.
어떠한 사건인지는 제가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 합니다.
단지 저희는 지휘관의 명령으로 폭동진압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갖추고 부대내에서 광화문 지역으로 투입 초읽기에 들어 갔었습니다.
그 당시에 출동 명령만 떨어졌다면 5분내에 서울 시민들에게 달려 나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전 그 당시 청와대 인근에서 발생한 시위를 폭동으로 간주 했었으며 그들을 우리가 진압을 해야 한다는 기본 훈련을 철저하게 받았었습니다.
저의 군 생활 중 전쟁 대비 훈련 역시 철저하게 받았지만 아울러 폭동 진압 훈련 역시 빡세게 받았습니다.
전경보다도 더 혹독하고, 철저하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와 제 동료들 심정이 어떠했는지 아시는지요.
꼭 양심선언 하는 기분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너희들(시위자들) 때문에 우리들이 이렇게 X 고생을 한다,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다.(지금 생각해 보면 전 생각이 너무 모자랐습니다.)
정말 악다구니가 바쳐 있는 상태였습니다.
만일 그 당시 우리 부대원들이 출동했었다면 정말 큰 불상사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다행이도 이 역시 대기하다가 철수 하고 말았습니다.

작년 소고기 파동 당시 뉴스를 접했을때 광화문에 컨테이너를 쌓아 놓고 촛불 집회 참가자를 통제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전 바누아투에서 그 사진을 보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저 컨테이너 잘 쌓아 놓았다라고 생각도 했습니다.
만일 시위자들이 광화문을 거쳐서 청와대로 들어섰다면 아마도 저희 부대원 같이 철저하게 훈련 받은 군 부대 요원들이 투입 되었을 것이며, 악에 바쳐 있는 군 요원들이 시민들을 어떻게 다루었을까 생각해보면... 그러했다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소름 끼치도록 아찔했었던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각설하고, 어쩜 지금 용산 참사 추모 대회의 시민들을 봉쇄하기 위하여 투입된 전경도 그때 저의 심경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란 생각을 해 봅니다.
현재 전경의 눈엔 자신보다 연배로 보이던 말던 크게 개의치 않을 정도의 극심한 감정의 혼란 속에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현재 누구의 잘못을 가리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경의 어머니가 전경의 위치 였다면, 전경이 시위대의 위치에 있었다면 우리 모두는 자기 자리에서 비슷한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만 단지 이러한 우리의 현실이 개탄 스러울 뿐입니다. ㅠㅠ